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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은 왜 ‘리자도’(理自到)를 말했는가? - 주희 격물론의 수용과 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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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황은 왜 ‘리자도’(理自到)를 말했는가? - 주희 격물론의 수용과 변용 -
  • Why did Yi-Hwang(李滉) say ‘Lizado theory’(理自到說)? -The Acceptance and Transformation of Chu-Hsi(朱熹) s ‘theory of investing things’(格物論)-
저자명
김상현(Kim Sang-Hyun)
간행물명
퇴계학논집KCI
권/호정보
2018년|23권 (통권23호)|pp.181-219 (39 pages)
발행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1.8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이황의 격물론에 대한 선행연구는 1970년대 이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논자가 보기에 이황이 만년에 왜 ‘리자도설’을 주장했는지에 관해 종합적으로 조명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격물론의 두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론적 관점과 수양론적 관점에서 ‘리자도’라는 주장이 갖는 의의에 대해 조명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논자는 이러한 이유에서 이황이 세상을 뜨기 불과 20여일 전에 자신의 초기 격물론을 수정한 후 전격적으로 ‘리자도’설을 주장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n‘리도’라는 용어는 이황이 아니라 기대승이 먼저 사용한 것이다. 이황은 줄곧 기대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세상을 뜨기 전에 전격적으로 ‘리도’(理到)를 넘어선 ‘리자도’(理自到), 즉 ‘리능자도’(理能自到)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황은 무엇 때문에 망설였던 것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리도’를 넘어선 ‘리자도’를 주장했던 것일까? 논자는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이황의 초기 격물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황의 초기 격물론은 주희의 격물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서, 이때까지는 인식주체인 마음과 인식대상인 리를 철저히 분리한 후 주체인 마음의 작용만 인정하고 대상인 리의 작용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초기 격물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후기의 ‘리자도’설에 입각한 격물론으로 수정되었는지, 그와 같은 수정이 왜 그렇게 늦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해 고찰한다. 고심하던 이황은 주희의 “리에도 반드시 작용이 있다(理必有用).”는 말을 근거로 인식대상인 리에도 작용이 있다고 선언한다. 이와 같은 선언으로 이황은 격물과정에서 ‘도’와 ‘격’의 주체를 나[己]를 넘어서 리로 볼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리무위설’에 입각한 주희의 격물론과 다르기 때문에 이황은 매우 망설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황은 주희가 ‘리용’(理用)을 ‘기(氣)에 의한 리의 드러남[理顯]’으로 보았던 것과 다르게 ‘리의 자발적 작용’으로 해석한다.\n마지막으로 이황이 무엇 때문에 세상을 뜨기 불과 20여일 전에 리의 자발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리자도(理自到)설’을 주장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검토한다. 이황은 앞서 심성론에서는 리발(理發)을, 우주론에서는 리동(理動) 및 리생기(理生氣)를 주장했음에도 그것이 주희의 리무위설과 충돌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리자도(理自到)를 선뜻 주장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주희의 리무위설에 따라서 격물론을 해석할 경우 인식론적 측면과 수양론적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온전한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양자를 철저히 분리해 버린다면 양자의 상호소통이 불가능해져 버리게 되고, 도덕적 수양을 위해서는 도덕성 그 자체인 리의 적극적인 작용이 필요한데, 리를 거의 죽은 물건[死物]으로 간주하게 되면 인간의 마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n결국 이황은 격물론의 인식론적 측면에서는 인식주체인 마음과 인식대상인 리 사이에 ‘작용’[用]이라는 유사성을 확보함으로써 상호소통이 가능한 인식론을 수립하고자 했으며, 격물론의 수양론적 측면에서는 ‘마땅히 그렇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는’[所當然而不容已] 도덕법칙으로서의 리가 지녀야 할 주재(主宰)성을 부각시켜서 도덕성의 최고 징표인 ‘리(理)가 사람들에게 도덕적 명령으로 다가올 수 있다’[理能自到]는 것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영문초록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ain why Yi-Hwang(李滉) had suddenly asserted the ‘Lizado theory’(理自到說) after modifying his early theories just 20 days before his death. To find the answer to these questions, We attempts the following. First, it is necessary to examine Yi-Hwang s early ‘theory of investing things’(格物論). In Yi-Hwang s early ‘theory of investing things’, he succeeded Chu-Hsi(朱熹) s ‘theory of investing things’. At that time, Yi-Hwang completely separated the Li that is the object of recognition from the mind that is the subject of recognition. And He admitted only the active nature of the mind that is the subject of recognition, and not the active nature of the Li that is the object of recognition.\nNext, we examine how Yi Hwang s early ‘theory of investing things’ was modified into the later ‘theory of investing things’, and why such modifications were made so late. Based on Chu-Hsi s term ‘Lipilyouyong’(理必有用), Yi Hwang declares that there is an active nature in the object of recognition.\nFinally, we examine what led Yi Hwang to claim the ‘Lizado theory’, which is interpreted as expressing the active nature of the Li just 20 days before his death. The reason why Yi Hwang claimed the ‘Lizado theory’ is because Chu-Hsi s the theory has the following problems. That is, If subject and object are completely separated during recognition process, it is impossible to communicate between them. Also If Li cannot play his part as a moral law in the foster process, there are weaknesses in turning an individual into a moral being.

목차

1. 들어가며\n2. ‘기격’(己格), ‘기도’(己到)의격물론\n3. 새로운변용: ‘기격’(己格), ‘기도’(己到)에서 ‘리자도’(理自到)로\n1) 새롭게수정된격물론\n2) 주희와의 결별\n4. 이황은왜 리자도를 말했을까?\n5.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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