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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애국심 선양방안
이세영, 한규철 한국보훈학회 한국보훈논총 36 Pages
한국보훈학회 한국보훈논총 2012, 제 11권 제 3호 (통권 24집) 8 233-268 (36 pages)
우리 겨레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닥쳐온 온갖 도전과 시련을 슬기롭게 헤쳐 왔 다. 또한 어려움을 오히려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계기로 삼는 슬기와 강인성을 발휘했다. 그 리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여 어떤 난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었으 며, 보다 더 도약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은 건국 60여 년 이 지난 오늘도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 된 상태이다. 또한 종복 및 좌익세력들이 활개를 치 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혼란을 슬기롭게 헤쳐 나아가기... -
일반적으로 조선유학사에서 예학은 사계와 한강이 활동하던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격화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16세기 퇴계 이황에 의해 조선 예학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처럼 퇴계는 조선 예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학과 관련한 저서 나 편찬서를 남기지 않았다. 다만 『退溪先生喪祭禮答問』처럼 평소 문인 이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왕복서 중에 예를 주제로 한 답문들이 문인 또 는 후학들에 의해 발췌ㆍ편찬되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퇴계가 예서를 남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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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簡을 통해 본 退溪의 스승으로서의 면모와 그 의의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2012, 제 11호 4 1-31 (31 pages)
생애 및 학문적 성숙도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맞물려 있다. 월천에게 보낸 서간에서 퇴계는 첫째, 인간적인 교유에 기반하여 삶을 공유하는 방식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퇴계는 여러 제자들의 공부 과정을 상세히 묻기도 하고, 그리움을 전하기도 하며, 어려운 형편과 생계를 걱정하는 등 제자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었다. 퇴계의 가르침의 두 번째 특징은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을 깨우치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공부를 멈추지 않고 늘 정진하는 열정적인 학자였으나, 자신을 낮춤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학문에 더욱 매진하게... -
남학파를 형성한다. 향리의 학문풍토를 조성한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 龍)을 비롯하여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한강 정구(寒岡 鄭逑), 월천 조목(月川 趙穆) 등의 유명한 인재가 배출되었다. 대학자인 퇴계의 일관된 근면 성실의 소박한 학문 자세는 덕과 교양 을 겸비한 후덕한 학자의 명성 외에도 한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현 실생활과 학문생활을 엄격히 구분하여 최후까지 학자의 본분을 지킨 성 학자로서의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제자들은 스승 퇴계 학문의 깊이를 공 자․맹자의 도를 동양에 밝힌 유일한 사람으로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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