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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宗系와 倭事를 曲筆한 중국 文獻 - 명·청시대에 간행된 문헌을 중심으로 -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7, 제 62집 5 167-229 (63 pages)
명·청 왕조 시대에 편찬된 관찬 및 사찬 사서에 조선 태조의 종계문제나 倭事를 기록한 서적이 적지 않다. 다만 그 경우 역사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주요한 원인은 조선 역사에 대한 몰이해이다. 그 다음으로는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행 사적들의 오류를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발췌하여 인용하여 서술한 경우이다. 셋째는 조선의 오류 시정의 요구와 황제의 수정이나 개편 지시가 있었음에도 어떤 숨은 정치적 의도에 의해 오랜 기간 수정되지 않고 편찬된 경우도 있다. 명조 사적에서 문제가 된 것은 네 가지... -
謹行의 模範과 같은 자세로 수학기를 보냈다. 거기다가 뛰어난 수 재였기에 학문적 성취도 컸다. 그리고 이 성취가 그를 교만하게 했고, 무모한 학문적인 獵等을 불렀다. 교만이라는 인격적인 위기와 질병이라 는 신체적인 고통 속에서 방황하던 그는 두려움을 배웠다. 가족의 권유로 사환의 길로 나선 그는 모범적인 관료였다. 직분에 충 실하였고, 사람을 대함에 겸손하였다. 待人과 處事와 接物 어느 것도 경 건한 자세로 일관하였다. 祿仕이건 行道之仕이건 그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은 그의 능력 이상을 요구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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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판과 이야기문화는 오늘날에 이르러 크게 변화되었다. 농어촌 공동체 단위의 이야기 전승도 급속도로 망각일로에 있다. 첨단 매체의 출현이 그러한 변화를 더욱 추동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농어촌의 설화 조사는 유능한 화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구연하지 않게 된 이야기들을 캐내는 방식에서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이 연구는 여러 유형의 공동체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이야기판의 전통이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는 현실에서, 전통적 이야기판들의 활성(活性)을 가능하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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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미흡하였던 옛사람들이 상호 간의 교유하는 방법은 시문이나 편지를 주고받거나 인편을 이용하는 정도였다. 전통시대 편지 중 종이에 적거나 비단에 적은 편지를 모두 간찰(簡札)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선현의 글씨나 그림을 간직하려는 마음에서 그들이 쓴 친필인 진적(眞迹)을 모아 첩으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소장 『려선합벽』은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명인들의 친필 서첩으로다양한 인물 70인의 필적이 수록되어 있다. 서첩 구성은 각 인물의 글씨를 배접하고 그 여백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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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국가급 대표박물관인 역사박물관은 ‘국가박물관’ 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북경도서 관의 명칭도 ‘국가도서관’ 으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1982년 11월 19일 공포 시행 되었던 ’中華A民共和國文物保護法’ 도 2002년 새로 제정하여 2002년 10월 28일 第九屆全國 A民代表大會常務委員會第三十次會議에서 통과하여 공포하였다1) 그리고 현재 중국은 수적으로 박물관강국이 되어 있다. 근대화를 통해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 들이고 오늘날 발전된 많은 박물관을 중국내 곳곳에 두고 있지만, 그 박물관의 탄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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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代의 理學을 집대성하여 朱子라고 칭송되는 晦庵朱熹(1130∼ 1200)와 南軒張?(1133∼1180)과 林用中세 사람이 衡山을 유람 하고 『南嶽唱酬集』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특히 주자의 남악유산 과 유산시는 이후 조선조의 문인 학자들, 특히 퇴계학파의 문인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영향을 밝히기 위해 서는 주자의 남악유산시의 성격 규명이 요구되는데, 먼저 그것을 형식·소재·주제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후 주자의 남악유산과 유산시가 퇴계학파에 끼친 영향을 소개한다. 주자의 남악유산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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