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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었다. 따라서 麻余의 왕권은 상당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부여의 정치적 실권이 大使 位居에 의해 장악되었던 정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大使 位居와 牛加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등 정국의 혼란이 이어지는 한편, 왕 麻余 마저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결과 부여의 중앙에서는 지배층의 분열과 이탈 현상이 심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는 ‘諸加가 自戰하는’ 부여의 전통적인 방어체계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던 원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부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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