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薩摩藩英国留学生派遣に関する研究
- 사쓰마번 영국 유학생 파견에 관한 연구
- ㆍ 저자명
- 飯山健
- ㆍ 간행물명
- 한국일본교육학연구KCI
- ㆍ 권/호정보
- 2017년|22권 2호(통권35호)|pp.109-126 (18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일본교육학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JPN| PDF텍스트(1.02MB)
- ㆍ 주제분야
- 교육학
日本では外国に行くことは徳川幕府か16ら39年から厳しく禁じられてきた。ところが18、53年 のペリー提督の来航と1854年の開国、そして1858年に米国と日米修好通商条約が結ばれて以 来、幕府と外国との間に次々に不平等条約が締結されると日本全国で外国排斥運動、すなわち天 皇を国の中心にすえ外国勢力を排斥しようとする尊皇攘夷思想が広がった。そのよう18な6中2 、 年9月14日に薩摩藩の国父である島津久光が東京から京都に戻る途4中名、の英国人が彼の行列に 遭遇した。その際、彼らが行列を乱してしまったことで、偶発的に殺傷事件が発生した。この事 件が生麦事件だ。この事件が原因で翌年の1863年8月15日に薩摩藩と英国の間に薩英戦争が起こ った。この軍事的な衝突をきっかけに、薩摩藩は攘夷の愚かさを知り藩論が開国へと転換する 中、和平交渉をとおし両者は急速に接近した。これは英国が納得のいく賠償を得られたことと薩 摩藩が英国と発展的な関係を結ぶに十分な力を持つ一つの有力な勢力と認めたからだった。和平 交渉の過程で両者間に友好的な関係が成立する中、薩摩藩は英国に対し先進的な軍事技術を学ば せるための留学生の受け入れを求めた。この要請を英国が受け入れたこ4と名での随行員を含め 19名の留学生が英国に派遣されることになった。その留学生たちが帰国後、明治時代の多くの分 野で国家発展に貢献した。その中の一人である森有礼(1847-1889)は明治政府の初代文部大臣と して日本の教育の近代化に大きく貢献した。この研究の主な目的は、薩摩留学生たちが英国に派 遣されるようになった背景と教育史的意義を考察することにある。また同時に当時の留学の意義 を知ることで今日の留学の意味を再考する契機とした い。
일본에서는 외국에 가는 것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1639 년부터 엄격하게 금지되어 왔다. 1862 년 9 월 14 일에, 사쓰마(薩摩藩) 번의 국부(国父)인 시마즈 히사미쓰 (島津久光)가 도쿄에서 교토에 가는 길에 4 명의 영국 사람이 그의 행렬과 조우했다. 한 사람은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이 나마무기(生麦) 사건이다. 이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다음 해인 1863 년 8 월 15 일에 사쓰마번과 영국 사이에서 사쓰에전쟁(薩英戦争)이 일어났다. 그 결과, 서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양자는 평화협상 과정을 통해 가까워졌다. 그 협상과정에서 사쓰마번은 영국에게 유학생을 받아들이기를 요청했다. 이를 영국이 받아들임으로써 19 명이 영국에 파견되었다. 이들 유학생들은 귀국하여 메이지 시대의 많은 분야에서 국가발전에 공헌했다.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사쓰마 유학생들의 역사적, 교육사적 의의를 이해하는데 있다. 또한 동시에 이것을 통해 오늘날 유학의 의미를 재고할 기회로 삼고 싶다.
Ⅰ. 序論 Ⅱ. 薩英戦争の勃発 Ⅲ. 英国留学生の派遣 Ⅳ. 英国での留学生活 Ⅴ.要約及び結論 参考文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