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인간이 대개의 경우 비본래적 실존으로서 퇴락한 삶을 영위함으로 말미암아 진정
한 세계와 대면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그는 인간이 본래적 실존으로 도약하여 진정한 세계
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접해야 된다는 책무를 지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실존적 거듭남을 가져오
는 활동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 부분에서 그의 사유는 교육과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
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유가 요청하는 교육의 정체와 본질에 대하여 충분할 정도의 해명
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죽음에 대한 선구를 통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이에
서 비롯되는 불안이라는 근본 기분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실존 수행이 강조된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알레테이아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진리관을 피력하는 가운데 플라
톤의 동굴의 비유를 재해석하고 있으며, 알레테이아와 교육의 관련 가능성을 조금 더 시사하고 있
다. 교육의 본래적인 모습을 해명하는 일은 교육학의 고유한 소명이다. 교육학이 만약 하이데거가
해명하지 못하고 남겨둔 교육의 실체를 충실히 드러낼 수 있다고 하면, 이는 하이데거 사상에 대
한 교육학적 공헌으로 연결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교육학은 교육을 인간의 일상적 삶을 위한 도
구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을 해명하는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