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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大木·솟대 祭儀의 등장과 전개에 대한 試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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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立大木·솟대 祭儀의 등장과 전개에 대한 試論
저자명
이종철(Jongcheol Lee)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8년|106권 (통권106호)|pp.8-45 (38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17.95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마한의 계절제와 소도는 우리나라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사서에서만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고학적 접근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기록에 대한 타당한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판단된다. 본 글은 마한에서 확인되고 있는 많은 고고학적 개념의 제사들 가운데 소도에 존재했던 입대목 제의를 고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당대 유·무형유산의 산실(散失)로 말미암아 자료적 한계와 논리적 비약이 예상되고도 남지만 역사 기록, 고고학 자료, 그리고 몇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사료에 대한 고고학적 복원을 시도해보았다. 먼저 입대목 제의와 관련된 사료와 그러한 제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적 조건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능성이 높은 유적과 유물을 제시하여 입대목 제의에 대한 등장과 전개의 시간축을 수립하였다. 특히 마한의 소도에서 거행되었던 입대목 제의는 청동기시대 송국리형문화 단계의 원초적인 입대목 제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한국의 솟대 신앙은 기원전 3세기에 입대목 제의와 구분되는 하나의 제의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변동에는 북방문화의 영향과 새에 대한 관념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입대목과 솟대 제의는 삼국시대부터 민간신앙으로 전락하면서 소멸하거나 명맥만 간신히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국문초록

마한의 계절제와 소도는 우리나라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사서에서만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고학적 접근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기록에 대한 타당한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판단된다. 본 글은 마한에서 확인되고 있는 많은 고고학적 개념의 제사들 가운데 소도에 존재했던 입대목 제의를 고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당대 유·무형유산의 산실(散失)로 말미암아 자료적 한계와 논리적 비약이 예상되고도 남지만 역사 기록, 고고학 자료, 그리고 몇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사료에 대한 고고학적 복원을 시도해보았다. 먼저 입대목 제의와 관련된 사료와 그러한 제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적 조건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능성이 높은 유적과 유물을 제시하여 입대목 제의에 대한 등장과 전개의 시간축을 수립하였다. 특히 마한의 소도에서 거행되었던 입대목 제의는 청동기시대 송국리형문화 단계의 원초적인 입대목 제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한국의 솟대 신앙은 기원전 3세기에 입대목 제의와 구분되는 하나의 제의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변동에는 북방문화의 영향과 새에 대한 관념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입대목과 솟대 제의는 삼국시대부터 민간신앙으로 전락하면서 소멸하거나 명맥만 간신히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입대목 제의의 설정 Ⅲ. 입대목 제의의 전개와 솟대 제의의 등장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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