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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리유형 발생설의 학사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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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국리유형 발생설의 학사적 검토
저자명
송만영(Manyoung Song)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5년|95권 (통권95호)|pp.64-101 (38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0.66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본 논문은 송국리유형 발생과 관련된 여러 주장들을 학사적으로 검토하고 가락동 재지기원설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송국리유형 발생설은 크게 재지기원설과 외래기원설로 구분되며, 재지기원설은 역삼동 재지기원설과 가락동 재지기원설로 세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분과는 달리 기존 연구자들의 주장은 입론과 송국리유형의 계보와 발생 지역, 편년 그리고 소위 ‘선송국리유형’단계의 유물, 유구복합체에 대한 해석과 같이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즉 동일한 발생설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 연구자 간에 견해 차이가 있다. 발생설의 차이는 과거 부여 송국리유적에 대한 인식과 편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한 지역 청동기문화의 제일성에 근거할 경우 형태 변이는 공간보다는 시간을 더 반영하여 송국리유적을 완성기인 중기 후반으로 편년하였다. 이와는 달리 금강 유역의 지역성에 의미를 두는 경우에 송국리유적은 송국리 유형 형성기를 반영한다. 필자는 후자의 입장에서 금강 유역이 이전에 가락동유형 분포권이었던 점과 송국리유적의 장방형 주거, 가락동식토기, 구순각목문토기 등이 가락동유형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최근 14C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송국리식 방형 주거가 원형 주거보다 이르다는 역삼동 재지기원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는데, 금강 유역의 이른 14C 연대측정치는 다른 지역 송국리식 방형 주거보다 이르며, 대부분 송국리식 원형 주거와 관련되었다. 차령 이북의 서해안 지역에 입지한 일부 유적들이 선송국리유형 또는 형성기의 송국리유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적들에 공반된 역삼동유형 토기 편년안에 따르면, 금강 유역의 이른송국리유형 유적보다 매우 늦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송국리유형의 확산에 따른 문화접변으로 이해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락동 재지기원설에 대한 비판을 검토하였다.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북쪽의 역삼동유형과 남쪽 금강 유역의 가락동유형은 청동기시대 전기 이래로 서로 다른 문화전통이 유지되었으며, 중기 이후에도 이러한 양상은 지속되었다. 특히 금강 유역에서는 가락동유형에서 송국리유형으로의 계기적인 변화 과정이 14C 연대측정치뿐만 아니라 유구, 유물복합체에서도 관찰되었다. 늦어도 270014C 후반대에 송국리식토기와 송국리식 주거가 출현하였으며,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역삼동유형과 문화접변을 이루는데, 그 시점과 양상은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국문초록

본 논문은 송국리유형 발생과 관련된 여러 주장들을 학사적으로 검토하고 가락동 재지기원설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송국리유형 발생설은 크게 재지기원설과 외래기원설로 구분되며, 재지기원설은 역삼동 재지기원설과 가락동 재지기원설로 세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분과는 달리 기존 연구자들의 주장은 입론과 송국리유형의 계보와 발생 지역, 편년 그리고 소위 ‘선송국리유형’단계의 유물, 유구복합체에 대한 해석과 같이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즉 동일한 발생설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 연구자 간에 견해 차이가 있다. 발생설의 차이는 과거 부여 송국리유적에 대한 인식과 편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한 지역 청동기문화의 제일성에 근거할 경우 형태 변이는 공간보다는 시간을 더 반영하여 송국리유적을 완성기인 중기 후반으로 편년하였다. 이와는 달리 금강 유역의 지역성에 의미를 두는 경우에 송국리유적은 송국리 유형 형성기를 반영한다. 필자는 후자의 입장에서 금강 유역이 이전에 가락동유형 분포권이었던 점과 송국리유적의 장방형 주거, 가락동식토기, 구순각목문토기 등이 가락동유형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최근 14C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송국리식 방형 주거가 원형 주거보다 이르다는 역삼동 재지기원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는데, 금강 유역의 이른 14C 연대측정치는 다른 지역 송국리식 방형 주거보다 이르며, 대부분 송국리식 원형 주거와 관련되었다. 차령 이북의 서해안 지역에 입지한 일부 유적들이 선송국리유형 또는 형성기의 송국리유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적들에 공반된 역삼동유형 토기 편년안에 따르면, 금강 유역의 이른송국리유형 유적보다 매우 늦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송국리유형의 확산에 따른 문화접변으로 이해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락동 재지기원설에 대한 비판을 검토하였다.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북쪽의 역삼동유형과 남쪽 금강 유역의 가락동유형은 청동기시대 전기 이래로 서로 다른 문화전통이 유지되었으며, 중기 이후에도 이러한 양상은 지속되었다. 특히 금강 유역에서는 가락동유형에서 송국리유형으로의 계기적인 변화 과정이 14C 연대측정치뿐만 아니라 유구, 유물복합체에서도 관찰되었다. 늦어도 270014C 후반대에 송국리식토기와 송국리식 주거가 출현하였으며,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역삼동유형과 문화접변을 이루는데, 그 시점과 양상은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송국리유형 발생설의 여러 견해 Ⅲ. 부여 송국리유적의 편년과 계보 Ⅳ. 역삼동 재지기원설의 재검토와 가락동 재지기원설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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