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燕下都 辛莊頭 30號墓의 年代와 性格
- ㆍ 저자명
- 조진선(Jinson Cho)
- ㆍ 간행물명
- 한국고고학보KCI
- ㆍ 권/호정보
- 2012년|84권 (통권84호)|pp.62-97 (36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고고학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3.93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辛莊頭 30號墓에서는 韓半島系의 韓國式銅戈, 北方 草原系의 動物紋 牌飾 등이 출토되었으며 그 피장자를 戰國 燕의 장군 秦開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신장두 30호묘의 연대는 戰國時代 後期說이 대세이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거나 비교 대상을 전국시대로 국한하였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없다. 필자는 戰國時代 중기부터 西漢 중기까지의 무덤들 가운데 연대가 확실하면서도 피장자의 등급이 신장두 30호묘에 상응하는 대형묘들과 비교분석하여 그 연대를 재고해 보았다. 그 결과 신장두 30호묘에는 戰國 燕系의 특징적인 陶明器들이 부장된 것은 틀림없지만 전국시대의 다른 대형묘와는 달리 車馬坑과 版築 二層臺를 찾아볼 수 없으며, 출토유물에서도 서한 전·중기에 유행하는 陶器 및 金屬遺物들이 이미 등장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신장두 30호묘의 연대는 서한 초, 즉 기원전 2세기 초로 판단하였다. 燕王 盧綰이 匈奴로 도망하고 衛滿이 古朝鮮으로 망명하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西漢 初에 이 지역은 對匈奴, 對古朝鮮 관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韓國式銅戈와 動物紋 牌飾, 圓銎無管三翼鏃 등 한반도계와 북방 초원계 유물들을 부장한 신장두 30호묘의 피장자는 서한 초 대흉노, 대고조선 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辛莊頭 30號墓에서는 韓半島系의 韓國式銅戈, 北方 草原系의 動物紋 牌飾 등이 출토되었으며 그 피장자를 戰國 燕의 장군 秦開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신장두 30호묘의 연대는 戰國時代 後期說이 대세이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거나 비교 대상을 전국시대로 국한하였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없다. 필자는 戰國時代 중기부터 西漢 중기까지의 무덤들 가운데 연대가 확실하면서도 피장자의 등급이 신장두 30호묘에 상응하는 대형묘들과 비교분석하여 그 연대를 재고해 보았다. 그 결과 신장두 30호묘에는 戰國 燕系의 특징적인 陶明器들이 부장된 것은 틀림없지만 전국시대의 다른 대형묘와는 달리 車馬坑과 版築 二層臺를 찾아볼 수 없으며, 출토유물에서도 서한 전·중기에 유행하는 陶器 및 金屬遺物들이 이미 등장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신장두 30호묘의 연대는 서한 초, 즉 기원전 2세기 초로 판단하였다. 燕王 盧綰이 匈奴로 도망하고 衛滿이 古朝鮮으로 망명하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西漢 初에 이 지역은 對匈奴, 對古朝鮮 관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韓國式銅戈와 動物紋 牌飾, 圓銎無管三翼鏃 등 한반도계와 북방 초원계 유물들을 부장한 신장두 30호묘의 피장자는 서한 초 대흉노, 대고조선 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Ⅰ. 머리말 Ⅱ. 燕下都에서 辛莊頭 30號墓의 位置 1. 연하도의 구성과 대형묘의 분포 2. 대형묘의 구성과 구조 3. 유물의 구성과 도명기의 비교 Ⅲ. 辛莊頭 30號墓의 造營年代 1. 비교대상 무덤의 선정 2. 무덤의 구조를 통해 본 조영연대 3. 출토유물을 통해 본 조영연대 Ⅳ. 辛莊頭 30號墓 被葬者의 性格 1. 전국시대 후기 조영설의 근거와 문제 2. 피장자의 성격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