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統一新羅 開始期의 印花文土器
- -曆年代 資料 確保를 위하여-
- ㆍ 저자명
- 이동헌(Dongheon Lee)
- ㆍ 간행물명
- 한국고고학보KCI
- ㆍ 권/호정보
- 2011년|81권 (통권81호)|pp.177-216 (40 pages)
- ㆍ 발행정보
- 한국고고학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9.06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이 글에서는 기왕의 연구를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는 충남 부여의 능산리사지(陵山里寺址)와 정림사지연지(定林寺址蓮池),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서기 660년경 이후에 유입된 것으로 판단되는 신라문물인 인화문토기(印花文土器)를 세부적인 위치적 정황과 함께 기형과 문양을 재검토함으로써 기존 인화문토기에 대한 인식 재고와 역연대 추정 자료의 활용에 대한 당위성을 더욱 보강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직전 부여지역에 유입된 인화문토기의 특징적이며 공통된 양상은, 정형(定形)적인 마제형종장문(馬蹄形縱長文) 출현 이전의 과도기적 양상으로 명료하게 이해된다. 즉 인화문토기의 가시적인 속성인 문양은 이른 시기의 기하학적 모티브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문구에 문양이 양각으로 처리된 원문류(圓文類), 수적형문(水滴形文), 능형문(菱形文) 등 단일문류(單一文類)의 개별 밀집시문이 우세하다. 또한 유사종장문(類似縱長文)과 초기종장문(初期縱長文)도 확인됨으로써 문양 변천의 형식학적 전개과정상, 문양시문의 혼란기를 거쳐 가까운 어느 시기에 종렬이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1열 3개 이상의 마제형종장문 출현을 시사한다. 한편 서기 660년경 인화문토기의 문양시문 양상을 원문류의 밀집시문 유행과 1열 3개 이하 유사・초기종장문의 출현으로 파악한다면 이러한 문양시문의 과도기를 거쳐 다음으로 전개될 정형화된 마제형종장문의 출현은 언제인가? 이는 곧 과도기의 문양시문 양상의 존속기간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역연대 보강자료로서 경주와 부여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지역 남한산성(南漢山城) 출토 인화문토기를 제시해 보았다. 남한산성은 기존의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가 당으로부터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해 서기 672년경에 축조한 주장성(晝長城)으로 가장 유력시되어 왔던 곳이다. 이곳에서도 정형종장문 출현 이전의 과도기적 인화문토기 양상이 서로 동일하게 확인되는 점이 주목되었다. 결국 문양시문의 혼란기를 거쳐 가까운 시기에 전개될 마제형종장문의 출현은 문양 변천의 형식학적 관점에서 670년경 이후이며, 통일신라 개시기에 근접한 양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기왕의 연구를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는 충남 부여의 능산리사지(陵山里寺址)와 정림사지연지(定林寺址蓮池),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서기 660년경 이후에 유입된 것으로 판단되는 신라문물인 인화문토기(印花文土器)를 세부적인 위치적 정황과 함께 기형과 문양을 재검토함으로써 기존 인화문토기에 대한 인식 재고와 역연대 추정 자료의 활용에 대한 당위성을 더욱 보강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직전 부여지역에 유입된 인화문토기의 특징적이며 공통된 양상은, 정형(定形)적인 마제형종장문(馬蹄形縱長文) 출현 이전의 과도기적 양상으로 명료하게 이해된다. 즉 인화문토기의 가시적인 속성인 문양은 이른 시기의 기하학적 모티브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문구에 문양이 양각으로 처리된 원문류(圓文類), 수적형문(水滴形文), 능형문(菱形文) 등 단일문류(單一文類)의 개별 밀집시문이 우세하다. 또한 유사종장문(類似縱長文)과 초기종장문(初期縱長文)도 확인됨으로써 문양 변천의 형식학적 전개과정상, 문양시문의 혼란기를 거쳐 가까운 어느 시기에 종렬이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1열 3개 이상의 마제형종장문 출현을 시사한다. 한편 서기 660년경 인화문토기의 문양시문 양상을 원문류의 밀집시문 유행과 1열 3개 이하 유사・초기종장문의 출현으로 파악한다면 이러한 문양시문의 과도기를 거쳐 다음으로 전개될 정형화된 마제형종장문의 출현은 언제인가? 이는 곧 과도기의 문양시문 양상의 존속기간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역연대 보강자료로서 경주와 부여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지역 남한산성(南漢山城) 출토 인화문토기를 제시해 보았다. 남한산성은 기존의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가 당으로부터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해 서기 672년경에 축조한 주장성(晝長城)으로 가장 유력시되어 왔던 곳이다. 이곳에서도 정형종장문 출현 이전의 과도기적 인화문토기 양상이 서로 동일하게 확인되는 점이 주목되었다. 결국 문양시문의 혼란기를 거쳐 가까운 시기에 전개될 마제형종장문의 출현은 문양 변천의 형식학적 관점에서 670년경 이후이며, 통일신라 개시기에 근접한 양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었다.
Ⅰ. 머리말 Ⅱ. 轉換期의 時代 區分 硏究史 Ⅲ. 轉換期의 印花文土器 Ⅳ. 印花文土器로 본 統一新羅 開始期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