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墳墓 築造 社會의 開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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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墳墓 築造 社會의 開始
저자명
배진성(Jinsung Bae)
간행물명
한국고고학보KCI
권/호정보
2011년|80권 (통권80호)|pp.5-28 (24 pages)
발행정보
한국고고학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5.13MB)
주제분야
인문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지석묘가 가장 밀집한 곳인데도 정작 분묘 연구는 송국리 단계에만 집중되어 왔는데, 다행히 근래에 와서 전기 분묘 자료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는 전기 분묘를 크게 토광묘·석관묘·지석묘·주구묘로 구분하여 살펴본 결과, 모두 전기 후반에 속하며 그 속에서도 토광묘와 석관묘가 조금 이른 시점에, 지석묘와 주구묘는 다소 늦은 시점에 출현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일부 주구묘를 제외하고는 후기처럼 군집하지 않으며 단독 혹은 두기 배치가 많고, 충적지와 같은 평지도 있지만 주위를 조망하기 좋은 구릉 정상부 및 능선과 이어지는 말단부에 입지한다. 또 보강석·관대·목탄·암갈색부식토 등을 통해 목관의 존재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의례와 관련한 흔적도 전기 분묘에서부터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동일한 부장습속을 보이는 전기 분묘는 종류별·지역별 편중 없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어느 특정 지역을 기점으로 확산되었다기보다는 남한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개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 전기 분묘의 기원 및 원류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지에서 이전 시기와 연결되지 않고 동일한 부장습속과 함께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현상을 볼 때 외부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중요한 곳이 중국 동북지역인데, 최근 화성 동화리유적과 광주 역동유적의 분묘에서 굵은 목탄과 인골편이 출토된 바 있다. 요동지역의 지석묘에서도 화장인골이 상당수 확인되고 있는 점은 양 지역 간의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선사~고대의 분묘는 계층·의례·사회적 성격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분묘 축조가 일반화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취락구조 및 사회적 복합도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분묘 축조의 개시는 해당 사회를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 큰 획기가 될 수 있는데, 전기 후반은 분묘 축조뿐만 아니라 대규모 취락의 형성, 동검의 출현, 횡대구획문토기의 등장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나는 단계이다. 즉 전기 전반의 무문토기사회를 한 단계 향상시켜 송국리문화와 같은 발달된 농경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전기 후반 남한 전역에서 시작되는 분묘 축조의 개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존의 전기 후반은 하나의 큰 획기이므로 ‘중기’라는 독립된 시기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국문초록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지석묘가 가장 밀집한 곳인데도 정작 분묘 연구는 송국리 단계에만 집중되어 왔는데, 다행히 근래에 와서 전기 분묘 자료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는 전기 분묘를 크게 토광묘·석관묘·지석묘·주구묘로 구분하여 살펴본 결과, 모두 전기 후반에 속하며 그 속에서도 토광묘와 석관묘가 조금 이른 시점에, 지석묘와 주구묘는 다소 늦은 시점에 출현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일부 주구묘를 제외하고는 후기처럼 군집하지 않으며 단독 혹은 두기 배치가 많고, 충적지와 같은 평지도 있지만 주위를 조망하기 좋은 구릉 정상부 및 능선과 이어지는 말단부에 입지한다. 또 보강석·관대·목탄·암갈색부식토 등을 통해 목관의 존재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의례와 관련한 흔적도 전기 분묘에서부터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동일한 부장습속을 보이는 전기 분묘는 종류별·지역별 편중 없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어느 특정 지역을 기점으로 확산되었다기보다는 남한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개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 전기 분묘의 기원 및 원류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지에서 이전 시기와 연결되지 않고 동일한 부장습속과 함께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현상을 볼 때 외부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중요한 곳이 중국 동북지역인데, 최근 화성 동화리유적과 광주 역동유적의 분묘에서 굵은 목탄과 인골편이 출토된 바 있다. 요동지역의 지석묘에서도 화장인골이 상당수 확인되고 있는 점은 양 지역 간의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선사~고대의 분묘는 계층·의례·사회적 성격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분묘 축조가 일반화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취락구조 및 사회적 복합도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분묘 축조의 개시는 해당 사회를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 큰 획기가 될 수 있는데, 전기 후반은 분묘 축조뿐만 아니라 대규모 취락의 형성, 동검의 출현, 횡대구획문토기의 등장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나는 단계이다. 즉 전기 전반의 무문토기사회를 한 단계 향상시켜 송국리문화와 같은 발달된 농경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전기 후반 남한 전역에서 시작되는 분묘 축조의 개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존의 전기 후반은 하나의 큰 획기이므로 ‘중기’라는 독립된 시기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無文土器時代 前期 墳墓 硏究의 現況 Ⅲ. 前期 墳墓의 事例 Ⅳ. 特徵과 分布 Ⅴ. 築造 背景과 源流 Ⅵ. 劃期와 時期區分 ― 新 中期論의 一步 ― Ⅶ.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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