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추요증의(盛世芻蕘證疑)』는 『대동정로(大東正路)』 제5권에 「증의요지(證疑要旨)」 등 4편의 척사서(斥邪書)와 함께 실려 있는 정조대 처사 홍정하(洪正河, 호 髥齋)의 천주교 비판서이다. 특히 이 글은 천주교의 사회윤리, 즉 평등사상에 입각한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그밖에도 제사무용론(祭祀無用論), 천주대군대부설(天主大君大父說)을 비판하면서 유교적 윤리질서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수호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홍정하는 유교사상의 핵심인 인(仁)과 천주교의 애(愛, 博愛, 兼愛)를 같은 차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천주교가 유교적 가부장제(家父長制) 중심의 수직적, 신분 차별적 윤리강상(倫理綱常)을 해친다고 비판했다. 또 천주교의 4대 교리 중에 상선벌악(償善罰惡)을 제외한 천주(天主)의 존재 및 천지창조(天地創造), 강생구속(降生救贖), 삼위일체(三位一體) 등의 교리를 모두 부정하는 논리를 개진하였다. 그는 이러한 척사서를 저술하여 그와 교유하던 정범조(丁範祖, 1723~1801, 海左), 강준흠(姜浚欽, 1768~?, 三溟) 등에게 반천주교 사상을 전파했고, 특히 충주와 원주 사이, 즉 충청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당대의 지역 사대부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고 구한말 영남 사림들에게 척사론의 모범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척사론은 천주교의 교세가 평민과 천민들, 부녀자들에게 확장되는 것을 우려하여 신분평등, 남녀평등 등 근대적 사상을 남녀차별, 신분차별의 중세적 봉건적 수직윤리로서 비판하려고 한 데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기본적인 한계점이 확인된다. 다만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부장제(家父長制)에 입각하여 신분 차별적 수직사회를 유지하면서, 후손을 낳아 조상의 제사를 잇는 것을 효(孝)의 큰 덕목으로 여겼던 유학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하고도 유용한 현실사회 옹호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