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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의승군 전통에 대한 재고: 호국불교의 조선적 발현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6, 제 61집 3 87-119 (33 pages)
활용가치가 입증됨에 따라 이후 南漢山城의 사례에서 보듯 이 승군 전통의 계승과 승역의 관행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는 國役 체계 안에서 승려 노동력을 제도적으로 활용하였고, 그 대가로 승려의 자격과 활동이 용인되고 불교 존립의 토대가 다져졌다. 그렇지만 이는 출세간을 추구하는 불교의 고유한 지향을 전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불교사에서 호국과 호법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호국=호법의 틀로 전개되어왔지만, 조선시대 의승군과 승 역은 호국에 중점이 두어진 특수한 사건이자 현상이었다. 이러한... -
호국정신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과 나가야 할 방향 연구 -신세대 군인과 제대군인 중심으로-
양정훈 한국보훈학회 한국보훈학회 학술대회지 18 Pages
한국보훈학회 한국보훈학회 학술대회지 39차 학술세미나 4 1-18 (18 pages)
선조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호국정신으로 몸에 빼어 있었고, 후대 백성들까지도 호 국정신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고 본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정신을 보면 1860년대부터 외세의 침략과 1910년 이래 주권은 물론 정치적 자유와 최소한의 생존 권조차 박탈당했던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들은 국가주권회복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리고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참다운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을 위해 싸왔던 선조들의 과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방이후 이념적 갈등으로 말미암아 이곳저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급... -
탈세속화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공성 함양을 위한 불교교육의 길
한국종교교육학회 종교교육학연구 2022, 제 70권 5 93-113 (21 pages)
수 있는 불교교육의 길을 모색하였다. 연구 내용과 결론 자비심의 바탕 또한 공감이기에 진속불이(眞俗不二)론을 바탕으로 타자의 아픔을 자신의 병처럼 공감하고 연대하는 능력을 기르는 공감.협력 교육을 행한다. 폭력, 테 러, 집단학살의 근본 원인은 이교도, 다른 인종, 소수자를 타자화하여 배제하면서 동일성을 강 화하는 패러다임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원효의 변동어이(辨同於異)론을 바탕으로 눈 부처 차이를 제안한다. 눈부처 주체는 눈부처 차이의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소극적 자유, 적극 적 자유, 대자적 자유를... -
대립과 조화-한국 불교와 그리스도교 관계사
한국종교교육학회 종교교육학연구 2004, 제 19권 10 197-222 (26 pages)
일부 개신교도들의 공격적 선교에 대한 내부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방어적 대응 차원에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 전반에 《백교회통》과 《기독교급외교사》를 썼던 이능화와 20세기 후반에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상호 일치적 차원에서 잠시 논하기도 했던 이기영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교에 대한 불교권의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애정을 가지고 그리스도교의 신학을 제대로 다룬 불자들의 연구가 요청되는 때이다. 이러한... -
신라시대 불교 강경(講經)의 교육적 의의
한국종교교육학회 종교교육학연구 2016, 제 52권 4 71-101 (31 pages)
논문은 신라 시대의 불교의 강경 활동 및 강경 의례에 대한 기록을 몇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검토하고, 그 속에 담긴 교육적 의미를 찾아보는데 목적이 있다. 즉, 강경 활동과 의례는 강경의 목적, 강경의 대상, 강경의 장소, 강경의 방식과 형태, 강경의 시기, 강경(회)의 주최자 등에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강경의 개념도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고승개인에 의한 강경(Ⅱ장)과 국가에 의한 강경인 백좌강회(Ⅲ장), 그리고 사원 법회에서의 강경(Ⅳ 장) 등 세 가지로 나누어 고찰해보았다. ‘고승 개인에... -
新羅 景文王代 桐華寺 毘盧庵 佛敎美術品의 특징과 의의
서지민(Seo ji-min)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38 Pages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2018, 제91집 1 7-44 (38 pages)
밝혀보면서 신라하대 원당의 조영체계에 대해서도 불교미술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거하며 조성된 무구정탑으로서, 민애왕의 정토왕생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납석제사리호는 귀금속에 버금가는 재료로 인식되던 옥으로 제작되었으며, 특별히 흑칠을 하고 발원문을 새겼다. 금동사리함은 제작방식 면에서 기술적인 진보를 보이며, 외면의 삼존불상은 최신의 불상양식을 보이며, 타출기법과 선조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석조비로자나불상도 전통적인... -
頹落하거나 燒失된 사찰에 대해서는 空名帖을 발급하여 重修를 지원하였고, 왕실에서는 內 帑金으로 각종 불사를 설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는 침체를 면하지 못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승려들이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忠義를 위해 전쟁터 에 나가 싸운 이후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뀐 측면이 있었 지만 불교를 이단시하는 유학자들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山城과 史庫 등을 지키는 총섭제도를 통해 승려들은 양인처럼 軍役에 내몰리는 상황이 되었고, 또 종이를 만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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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국가의례로서의 불교의례 설행과 그 정치적 의미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5, 제 59집 2 35-74 (40 pages)
국가의례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양한 불교의례 가운데서도 궁궐이나 眞殿사원에서 국왕이 주재하는,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의례를 국가의례로 이해할 수 있다. 고려 시대 국가의례로서의 불교의례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첫 째, 국가의 권위와 왕권과 관련된 주요의례가 불교의례로 수렴됨으로써 불 교의례를 통해 왕권을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재생산하였다. 둘째, 불교의례 를 통해 불교로 왕권을 수식할 뿐만 아니라 국왕의 통치행위는 보살행으로 서 정당화되었는데, 이점에서 국왕의 菩薩戒受戒는 중요한... -
불교 정책의 성격을 다시 정리하자면, 승정과 그 변 화로 인해 국가 예속성이 강화되었다는 점과 중앙 집중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불교계가 크게 융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 넘 어가게 되면서 쉽게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이와 같은 성격을 거론 할 수 있다. 즉 여러 국가적인 제도에 의해 불교계가 국가에 너무 종속되 어 있었다는 점, 특히 수도 중심으로 불교계가 통제되는 취약성으로 인해 국가의 억불 정책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 승정이 특정 승려에게 위임되면서 불교계의 다양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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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北魏 平城, 洛陽지역 佛敎寺刹의 분석과 鮮卑族 습속이 佛事활동에 끼친 영향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2012, 제80집 1 5-35 (31 pages)
李沖는 궁전과 禮制性 건축물에 참여한 공인들의 이름이 황실 불교사찰의 건립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사실은 흥미롭다. 북위 평성, 낙양시대 최고 권력을 장악한 文明太后 馮氏와 靈太后 胡氏는 불교사찰, 석굴 등 다양한 불사활동을 진행하였다. 여성이 당시 최고 권력을 장악한 후 거액의 세금을 들여 거대한 사찰을 건립할 수 있었던 사회적인 배경은 동시대 남조와는 전혀 다른 북조의 특징이다. 북조 여성들의 강한 여성상은 북위 선비족의 유풍이며 母系氏族制 풍습은 탁발 선비족을 비롯하여 북방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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