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공시적 관점에서 퇴계가 주장한 ‘리(理)의 능동성 문제’를 로
욜라(Loyola)의 ‘영동변별(霊動辨別)’과 비교・대조하면서 영적인 각도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공시적인 관점으로 볼 때, 16세기의 이베리아 반도
와 한반도의 문화에 있어서 공통으로 보이는 특색은, <인문주의>와 <신
비주의>를 대립시키기 않고 결합시키려 했다. 한반도에서는, 소위 말하
는 ‘주기(主氣)적인 성리학’이 <인문주의>에, ‘주리(主理)적인 성리학’이
<신비주의>에 해당한다. 퇴계 이황은 이 주기와 주리를 대립시키기 않고
결합시키려 했다. 퇴계의 ‘리발(理發)’은 ‘사람에 있어서 이(理)의 발동의
기원・코스’에 대해서, ‘리동(理動)’은 ‘그 기원・코스의 성격’에 대해서,
‘리도(理到)’는 ‘기원・코스가 사람에게 미치는 의미’에 대한 논의로 볼
수 있다. 곧 ‘리도(理到)’는 자기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예감이다. 그렇다
면 퇴계의 수양법인 ‘궁리’와 ‘리발(理発)’・‘리동(理動)’・‘리도(理到)’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이를 위해 퇴계가 사용한 수행생활의 비유
인 ‘산타기’와 ‘강타기’의 묘사를 검토해 보니, 퇴계의 궁리는 ‘자력・타
력의 왕래’였다. 이러한 자력과 타력의 왕래는 이미 퇴계의 ‘리발’(=人)과 ‘리동’(=天)의 연결이 설명하는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
리도는 ‘환생의 예감, 신생에 대한 희망, 영원을 선취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퇴계는 여기에서 <신비주의>에 치우지지 않고 어디까지나 이를
<인문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6
세기 이후에 이어지는 <신비주의>와 <인문주의>의 상승적 발전의 길을
한반도에서 열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