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干支와 陰陽五行의 結合時代
- ㆍ 저자명
- 김학목
- ㆍ 간행물명
- 철학논집KCI
- ㆍ 권/호정보
- 2011년|25호(통권25호)|pp.169-194 (26 pages)
- ㆍ 발행정보
-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한국
- ㆍ 파일정보
- 정기간행물|KOR| 이미지(2.5MB)
- ㆍ 주제분야
- 인문학
干支의 밑그림이 陰陽五行說로 여겨질 정도로 간지와 음양오행설은 간결 하면서도 서로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간지가 음양오행설과 결합하는 시기가 전국시대말기라는 기존의 연구결과에 의문이 생긴다. 干支는 甲骨文 발굴을 통해 이미 股代에 흔히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학계의 일반적인 결론은 음양과 오행이라는 서로 각기 다른 범주가 전국시대말기쯤에 하나의 범주로 체계화되면서 간지와 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간지가 음양오행과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결합하기 위해서는 간지 제작 당시부터 음양오행설이 고려되었다고 여긴다. 간지가 상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여러 전적의 기록을 석기시대의 천문에 관한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간지는 전적의 기록처럼 股代 이전에 이미 만들어져서 股代에 성행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데 음양오행설은 하나의 이론 체계이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단순한 유물만으로는 그것이 상고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논증을 하기가 쉽지 않다. 좌전의 기록을 분석할 때, 음양오행설은 이미 춘추시대부터 간지와 결합되어 있었다. 비록 춘추시대 이전에 간지와 음양오행이 결합되었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간지와 음양오행의 결합시기를 전국시대 말기보다 훨씬 더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전국시대말기에 鄒衍과 같은 음양가들이 등장해서 이전의 음양오행설을 정교하게 다듬은 것은 시대적인 추이에 따른 것이다. 춘추시대부터 치열해지는 패권전쟁에서 시급한 것은 실질적인 부국강병책이기 때문에 음양가들은 무대의 전면에서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전국말기에 천하통일의 대권이 몇 나라로 압축되자 부국강병책 외에 각국의 왕들에게 자신이 대권주자라는 음양가들의 명분이 필요해진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편승해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하는 것이 鄒衍과 같은 학자들의 학설인데, 그 설명이 정교한 체계를 갖추고 있을 지라도 이전시대에 있던 것을 종합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干支的根底是陰陽五行說. 干支與陰陽五行為相互緊密地結合著.因此,對於把干支與陰陽五行說的結合時期認定露戰國末期的從前研究成果,發生提問.通 過甲骨曳的讀扭,明白了干支巳常用了在鹿代.然而學術界認為,陰鷗與五行兩 個概念,在戰國末期結合為一個範疇,因而其與平主再一次結合了論者以為為 了干支與陰陽五行為相互有鶴的緊密地結合,當成立干支之時,巳考慮到陰陽五 行說了. 將干支已成立在上古時代的諸典籍之記錄,從石器時代有關天文的遺物噱比 較君,如諸典籍立記錄千支配在監代以前成立,而且在殷代盛行的可能性很高 然而因為隘陽五行說是斗固系統的理論體系,所以不容易論盡其在上古時代已有 的.至於分析「春秋左傳」的記錄時,從春秋時代以來,陰陽五行說與干支巴結合 了在春秋時代以前,雖然拉不到干主與陰陽五行說相互結合的根擾,唯依擾「春秋左傳」的記錄,干主與陰陽五行說的結合時期可以推到更以前的時代. 在戰國末期,如鄒衍類的陰陽家出現,把從前的陰囑五行說進一步精巧地治 學,只是隨著時代的推移而已從春秋時代開始,其於霸權戰爭局面,社會的急 要蕩,當為實質的富國強兵策,所以在於社會政治舞臺陰障吾家們逐點消識了. 但在戰國末期,出露天下大一統的幾徵, 幾個強大國的君主各自需要以自己正為 統一君主的陰陽家的名分順便如此時代的推移,出現在歷史的前面,就獻嘟 衍類的陰陽家學說而在此須可知,其說雖然具有著精巧的系統,只不過以前時代的產物之諒合.
[요약문] Ⅰ. 들어가는 말 Ⅱ. 干支와 陰陽五行의 起源 Ⅲ. 干支와 陰陽五行의 結合時代 Ⅳ. 끝맺는 말 참고문헌 <中文提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