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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人華重慶の朝鮮漂着とその刷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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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明人華重慶の朝鮮漂着とその刷還
  • 명나라사람 화중경의 조선 표작과 그 쇄환
저자명
荷見守義
간행물명
동국사학KCI
권/호정보
2009년|47권 (통권47호)|pp.263-290 (28 pages)
발행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JPN| 이미지(6.43MB)
주제분야
교육학
서지반출

일문초록

화중경은 明朝 南直隷 無錫사랍이었다. 그는 嘉靖35년(1556) 4월 무석에서 왜구에게 납치되었다. 그때 왜구는 70여 척의 선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寧波의 四官이라는 명나라 사람이 무리를 이끌었으며, 부하들은 일본인[眞倭]이었다고 한다. 화중경을 납치한 이 선단은 명나라 군대[海防軍]의 공격을 받아 해체되었고 그를 태운 배는 강풍에 밀려서 동중국해를 북상하여 한반도 남부의 전라도에 표착했다. 그러나 상륙한 왜인들은 조선 군대에게 격파되었고 화중경은 겨우 살아남아 조선군에게 잡히게 되었다. 그후 조사에서 화중경이 華察과 같은 族人으로 알려지자 그를 한성으로 데려와 극진히 대접하였으며 왕이 직접 연회를 베풀어주고 본국으로 송환시켰다. 화찰은 가정 l8년(1539) 嘉靖帝의 아들 載?가 황태자로 책립된 것 등을 조선에 전해준 사절의 正使로, 명조의 고관이었다. 화찰도 무석 출신이어서 중국에서 파견된 관료의 신원까지 상세히 조사했던 조선측으로서는 무석 화씨라는 것만으로 화찰을 떠올린 것 같다. 그래서 화찰의 宗讀를 조사해 보았지만, 적어도 화찰의 직계에는 화중경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따라서 그가 화찰의 족인이었을 개연성은 있지만, 정말로 그가 족인이었는가를 증명할 수는 없었을 것인데, 조선 측은 화찰의 족인이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 무럽 조선에 표착한 선박 중에는 왜구와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군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해되는 경우가 있었던 듯한데, 화중경은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명과 조선에서는 표착지들로부터 상세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거듭하여 조사를 행하였다. 通事, 譯등 외국어를 이는 관리들의 입회하에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후 화중경은 冬至使 면에 遭東으로 송환되었다. 포로가 된 명나라 사람들의 송환은 명과 조선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명과 조선이 협력[連動]한 海防활동의 성과였다. 이상, 본 논문은 중국인[唐人] 쇄환의 일면을 밝힌 것이다.

국문초록

華重慶は 華重慶明朝南直隷無錫の人である。 彼は嘉靖35년 (1556) 4月に無 ?で倭訟に略取された.この倭寇は70隻余からなる船?で‘寧披の四官という明人が賊首として率い、ており、配下は?倭(日本人)であったという. 華垂度を掠ったこの刊船は明朝海?軍の攻?に遭って解?し、彼を?せたは?風に煽られて東シナ海を北上して朝鮮半島南部の全制道に出荷した. しかし、上院?した倭人は朝海?軍に討ち取られ、華重慶 は命がらカら朝鮮軍に拘束された. 拘束俊の取り調べてオ皮が?察の族人 であると朝鮮に認識されると、漢城で手厚くらてなされ 朝鮮玉王直に 事?を賜リ認識 注された. 華察は嘉靖18年. (1539)に嘉梢?の 皇子載?を皇太子に冊立することなどをいえる冊立のすとして、朝鮮に派遣された. 明朝の高?であった. 華察も無錫訪の身であリ、派遣官僚 の身己まで詳細に?べる例鮮側にとって無錫の依氏というだけで華察を 思い作かべたのだろう。そこで華察の宗謗を調べてみたが、少なくとも 華察の直系に慶という者はぃなぃ, ?って、肢が筆察の族人である 蓋然性はあるものの、本?に肱人なのかは, ?明できないのであるが、朝鮮側はそう認識したのである. この頃 、朝鮮に漂着した船舶のには倭 逝とリのけかない場介が今くあり、明朝によって無?日IJに殺される 場合があったようであるが. 華重慶は幸?で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明朝と初鮮とにおいては、このような漂者から?な情報を引き出すため、幾重にも取り淵べが行われた. 通事、?官など異?の言焦が分かる 官吏の立ち?いで以り訓べを行い、その後、?重盛は冬至使に付されて 遼東に送迎された. 被虜明人の送?は中朝?係?化に寄?し、中朝連動の海?活動の成果であった。以上、本論は唐人 刷?避の?面を明らかにし たものである.

목차

Ⅰ.はじめに
Ⅱ. 華重慶刷還の道途
Ⅲ. 唐人刷還と華重慶
Ⅳ. 華重慶漂着と明宗11年の倭冠
Ⅴ. 華察と華重慶
Ⅵ. おわりに
[국문초록]
[和文要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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