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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의승군 전통에 대한 재고: 호국불교의 조선적 발현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6, 제 61집 3 87-119 (33 pages)
승군 전통의 계승과 僧役의 관행화 문제를 살펴보았다. 의승군은 불교와 국가의 관계가 얼마나 밀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록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놓여있었지만 승 군의 전쟁 참여는 살상을 금지하는 계율을 어긴 명백한 범계 행위였다. 또한 당시 에 수행풍토의 약화와 승군 활동 후 환속하는 풍조를 낳기도 했다. 반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계율을 저버리기까지 한 의승군의 충의의 공적은 유교사회에서 평가 받았고 불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전란으로 승군의 활용가치가 입증됨에 따라 이후... -
이 글은 ‘借貸’활동을 둘러싼 국가와 불교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두 었다. 조선초 국가는 일관되게 억불책을 추진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불교계의 처 지는 열악해졌고, 그 위상은 현저히 낮아졌다. 사찰이 운영하는 借貸인 寶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찾아진다. 조선초 보가 운영되는 사찰은 일부에 불과하며, 모두 국왕의 명복을 비는 것을 중요 소임으로 하였다. 보는 사원의 재정을 돕고, 설행되는 佛事를 풍부하게 함과 동시에 민인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보는 불교색이 짙은 차대 활동이었다. 승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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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中古期 五臺山文殊信仰 受容說의 재검토 -慈藏의 唐 五臺山 參拜를 중심으로-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5, 제 59집 9 319-356 (38 pages)
문수신앙, 오대산문수신앙은 각각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화엄경?에 의거한 신앙이라는 별개의 연원에서 출발하는 신앙들이다. 이에 두 신앙의 성립시기와 사상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신앙이 중국 불교사의 변천과 더불어 오대산지역 불교의 발전에 따라서 결합되면서 나 중에는 동일하게 되었다. 동진 시기 번역된 60권본 ?華嚴經? ?菩薩住處品?에는 문수보살이 청량산에서 常住說法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바로 이 문구의 청량산을 중국 오대산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오대산문수신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역 대의... -
오대산사고의 수직승도 운영 규정은 1606년(선조 39)에 처음 제정되었 다. 수직승도는 강릉과 양양 두 읍에서 승려 40명을 差定하여 20명씩 교대 로 근무하게 했으며, 그 중 한 명을 首僧으로 임명하여 승도들을 통솔하도 록 했다. 1686년에 이르러 수직승도의 정원은 강릉과 양양에서 각 30명씩 총 60명으로 늘어났다. 수직승도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사고 건물을 상시적으로 순찰하여 건물의 손상 여부를 살피고 도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었다. 둘 째로 수직승도는 비상 상황이 발생하거나 포쇄·건물수리 등으로 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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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 · ?新唐書?李忠臣, 李希烈 열전 譯註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3, 제 54집 13 447-493 (47 pages)
唐代는 安史의 亂(755~763)을 기점으로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전기는 律令制度가 유효하게 기능한 중앙집권적 ‘율령제 시대’였다고 한다면, 후기는 율령제가 크게 붕괴되면서 각지에서 藩鎭들이 세력을 떨친 지방분권적 ‘번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唐後期의 번진 시대는 당조 중흥의 군주로 불리는 憲宗시대(805~820)를 기점으로 다시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즉 ① 이른바 ‘割據藩鎭’들이 주도권을 행사한 肅宗?代宗?德宗?順宗시기와 ② 당조가 어느 정도 주도권을 회복한 이후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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