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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人心方?에서 살펴본 퇴계의 건강(養生)론
주동진, 김한철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23 Pages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2013, 제 13호 9 251-273 (23 pages)
방법’으로 나누어 살펴본 것이다. 退溪의 ?活人心方?은 몸 과 마음이 하나라는 입장이었지만, 마음이 중심이고 몸은 관리의 대상이 라고 보았다. 이는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인 儒家와 道家의 입장과 같다. 退溪는 최고의 朱子學者로 불린다. 그런 그가 儒學이 아닌 道家의 醫書 라 불리는 ?活人心?을 필사하여 ?活人心方?을 지었으니 儒學과 道學의 統攝(Consilience)學者라고도 할 수 있다. ?活人心方?은 오늘날의 입장 에서 살펴보면 외과수술과 약제처방이 없는 ‘人文學的 想像力 (Humanistic imagination)’으로써의 건강(養生)을... -
家書에 나타난 退溪의 心理에 대한 一考 -長男 寯에게 부친 서찰을 대상으로-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2013, 제 13호 8 221-250 (30 pages)
퇴계의 기대와 실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 펴보았다. 學?家의 병행을 피할 수 없는 장남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 했던 퇴계였지만, 사대부로서 자식이 학문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자 하는 기대를 접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퇴계의 뇌리 속에 는 준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라는, 병립하기 힘든 두 감정이 공존하는 상 황이 지속되었다. 제3장에서는 세심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집안을 관리하 는 데 정성을 다했다는 측면에서 퇴계의 심리 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 았다. 퇴계에게는 자신이 지녔던 가문 수호의 의지와... -
退溪의 肖像畵에 대하여 - 近ㆍ現代期 ‘退溪像’ 탄생에 대한 성찰을 겸해서 -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2008, 제 2호 4 1-36 (36 pages)
氣運生動하는 경지로 승화시키 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퇴계의 초상과 동상 등은 ‘이상 적인 인간의 모습’과 ‘실재했던 한 인간의 정신과 개성’을 합성하 여 그린 상상의 작품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상상의 이미지 를 실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며, 곳곳에서 퇴계를 만나고 있다. 예컨 대, 우리가 사용하는 천원 권 지폐 속의 퇴계 초상. 서울 남산의 퇴계 동상. 이런 등등은 우리가 만들어 오고, 향수해온 퇴계의 초 상이며,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偉人의 再現이다. 퇴계는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통치 논리... -
이 글에 수록한 退溪의 拾遺詩48제 69수는 현전하는 退溪詩 2,300여수(이 글에 수록한 拾遺詩를 포함함. 하동)를 두고 본다 면, 실상 그리 많은 작품을 수집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退溪詩의 경우 『退溪集』 편집 당시만 해도 4,000수에 이를 것으 로 추정되는 2,000여제가 수집되었다가, 그 중 2,243수만 문집에 실리고 나머지는 유실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拾遺詩 는 이 글에서 찾아 수록한 48제 69수 외에도 앞으로 작품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평상적으로 조사 할 수 있는 범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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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는 길이 바로 ‘간결’함의 추구였는바, 이 역시 ‘엄격한 법도’ 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퇴계는 갈문을 써서 석면에 새 겨 넣을 때, 갈석의 공간처리에도 일정한 미학적 배려가 요구된 다고 보았다. 즉 ‘균제미(均齊美)’를 추구했던 것이다. 퇴계의 비지문 찬술태도는 한유와 구양수의 비지서사 방식에 기초해 있으면서 훗날 비지문의 전범을 보여준 농암 김창협에 의해 거듭 강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선후기 고문가들에게 하 나의 지침으로 작용했다. 향후 연구에서는 퇴계의 인간이해 태도 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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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簡을 통해 본 退溪의 스승으로서의 면모와 그 의의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2012, 제 11호 4 1-31 (31 pages)
등 제자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었다. 퇴계의 가르침의 두 번째 특징은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을 깨우치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공부를 멈추지 않고 늘 정진하는 열정적인 학자였으나, 자신을 낮춤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학문에 더욱 매진하게 하는 스승이었다. 셋째, 퇴계는 월천의 성정에 대해 때로는 거침없고 직설적인 조언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온화하게 다독이기도 하면서 성정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넷째, 퇴계는 서간을 통해 월천의 학문적 물음들에 대해 성실하게 고증하고 토론하고 답변하는 대스승으로서의 면모를... -
사상의 핵심적 영역이 되었다. 퇴계의 敬 學 思想은 바로 이런 전통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본고는 이 퇴계의 敬學 思想을 탐구한 것이다. 다만 기존의 연구가 주로 四端七情論과 人心道心說의 人性論的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론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이에 비해 본고는 그의 삶의 체험과 학문적 역정을 통하여 敬學 思想의 형성을 고찰하였다. 그것은 유학이 본래 단 순한 이론적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통하여 실천하는 것 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는 퇴계라는 인간의 주체 확립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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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문 태도와 삶의 방식이 달랐다. 퇴계가 학자이면서 관료로서의 삶을 병행했다면, 남명은 고결한 선비의 풍모를 지켰던 전형적인 처사형(處 士型) 선비였다. 그들은 서한을 통해 서로 예우와 존경의 마음을 다하 였고 정신적 교유의 아쉬움을 토로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학문 태도와 삶의 방식이 다르다보니 상대의 학문을 인정하지 않거나 삶의 태도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것은 후일 퇴계 계열과 남명 계열의 불화 로 이어졌고, 나아가 학파와 당파로 분화하게 됨으로써 조선 후기 사상 사, 정치사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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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진육조소」를 주요 논증자료로 채택하였다. 이를 통해 퇴계의 ‘성학=유 교정치학의 정수’ 혹은 삼위일체의 정치 담론(학문과 도덕 및 정치의 삼위일체)의 다채로운 양상을 고찰하였다. ‘도덕=정치=학문’이라는 도식 은 동아시아 유교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이 도식은 거의 모든 유학자의 의식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기본적 사유 형태였다. 퇴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의식구조 하에서 자기만 의 독특한 학설 체계(성학의 체계와 새로운 천견론과 같은 입장)를 만 들어내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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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고에서는 조선 성리학과 중국 明代사상사에서 大儒로 평가되는 퇴계와 즙산의 대표적 학술용어인 ‘聖學’이라는 개념에 관하여 주목하고, 각각의 저작 성학십도(퇴계)와 성학종요(즙산)를 의론의 단서로 삼 아 비교분석하고자 하였다. 퇴계의 성학십도에서 ‘성학’은 주자학의 핵 심을 일컬으며, 그것을 10개의 圖[그림]로 나타낸 것이다. 이에 반해 즙 산이 말하는 성학종요에서의 ‘성학’은 송명대 학술사의 핵심을 일컬으 며 주왕 절충학적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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