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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고구려와전 연구 비판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2020, 제96집 4 105-139 (35 pages)
않은 점이나, 고구려와전으로 보고한 유물의 연대관에 대한 충분한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점, 그리고 식민지사관에 입각해 고구려 문화가 중국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시각은, 심각하게 왜곡된 역사해석의 발로이며 불완전한 고구려와전에 관한 연구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편, 본 연구에서는 세키노가 집성한 유물 중에서 고구려의 와전으로 판단이 가능한 것들을 선별하는작업도 실시했다. 비록 세키노의 자료가 정확한 출토지나 층위를 파악하기 어렵고 채집된 유물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는 집성자료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가... -
朝鮮 後期 宮中舞踊服飾의 服色思想(II)에 關한 硏究 -佳人剪牧丹.高句麗舞.公莫舞.萬壽舞를 중심으로-
남후선 한국의상디자인학회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8 Pages
한국의상디자인학회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2003, Vol.5 No.1 89-96 (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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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이 출토된 대형 적석총을 편년하였다. 고구려 권운문 와당의 출현 형식인 國內城 人民浴池에서 출토된 “太寧四年”명 와당은 중국 西晉代의 와당과樂浪土城 출토 와당에서 계보를 구할 수 있었는데, 직접적인 계보는 낙랑토성에서 출토된 권운문 와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구려 권운문 와당의 완성된 형식은 ‘連弧文+銘文’이 조합된 와당이다. 이 와당의 기년은 國內城의 南門里 와 第2小學에서 출토된 와당의 干支 명문을 판독한 결과 禹山M3319 와당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연대보다 一周 甲 하향된 4세기 후반으로 편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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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故地의 渤海古墳
강현숙(Hyunsook Kang)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32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09, 제 72집 5 160-191 (32 pages)
고분군도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 중국 요령지방의 발해 석실분은 구조와 장속의 일부에서 고구려 고분과 특징을 공유하는 반면,말갈과의 관련은 보이지 않으므로,고구려와 직접 계승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분 조성의 중심시기와 고구려 멸망과는 시간적 간격이 있으며,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 이 일대를 둘러싼 당과 고구려 유민 그리고 발해의 고구려 고지 회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고구려 고지의 발해 석실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사하게 된다면 발해의 고구려 계승 관계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며,... -
바탕으로 독자적인 기술계통을 창안해 내었다. 5세기 이전에 이미 전연과 고구려에서는 독자적인 갑주 제작 기술계통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4세기 3/4분기~4/4분기에 양국의 제작기술 상 양극화가 심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갑주의 출토상태를 알 수 없는 등의 문제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참고하여 전연의 갑주 구성과 비교를 시도해보았다. 이를 통하여 갑주 구성에 따라 계층적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또 경갑과 대퇴갑의 경우중장기병을 위하여 개발된 갑옷이며 일반 보병들은 착장하지 않은 점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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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집안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후, 왕릉의 구조에서 어떠한 일련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본고에서 문자명왕릉의 후보로 기단봉토석실분을 지목하는 이유는, 평양으로 천도한 장수왕의 뒤를 이은 문자명왕 대까지도 집안지역의 매장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 집안지역에서 유행한 적석총과 평양지역에서 유행한 봉토석실분이 결합된 특징이 기단봉토석실분에서 모두 확인된다. 현재까지 고구려의 기단봉토석실분으로 보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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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성도(星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천문도(天文圖)의 특징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8, 제 64집 3 89-125 (37 pages)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경우, 1913년 루퍼스의 연구 이후로 고구려 모본설이 정설로 굳어져왔다. 그러나 이 천문도의 최외각에 새겨 넣은 황도12궁명을 분석한 결과 모본은 고구려시대가 아닌 고려시대의 것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조선시대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식 단일원형 성도의 전형으로 인식되었다. 이 성도의 전통은 서양천문학과 서양식 성도가 전래한 조선후기까지 지속되어 조선식 천문도의 특징을 형성했다. 18세기 중반에는 전통적인 단일원형 성도를 서양식 양반구형 성도와 결합한 신구법천문도가 만들어졌다.... -
이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구려 실 관련 누리집 설명과 활동지, 시중에 판매되는 관련 교재를 비교연구대상으로 삼았 다. 연구문제는 첫째, 박물관교재의 목적이 무엇인가? 둘째, 박물관교재의 유형에 따른 교육방법의 차이는 무엇인가? 셋째, 박물관교재의 효과는 무엇인가였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는 구성주의 학습매체의 주요 구성 원칙을 정하였다. 구성 원칙의 세 가지 범주는 체험학습?협동학습?평가방법으로 나누고 다시 평가원 칙을 적용하였다. 평가원칙의 세 가지는 접근성?책임감?고취성을 기준으로 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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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입자재현법(單一粒子再現法)을 활용한 고고유물의 진위판별 연구
김명진, 윤민영, 홍덕균, Kim. Myung-Jin, Youn. Min-Young, Hong. Duk-Geun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보존과학회지 8 Pages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보존과학회지 2008, Vol.23 73-80 (8 pages)
출토 전(塼)에서 산출된 고고선량 값들로부터 입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 시대에 제작되었다고 주장되는 4점의 고고학 유물에 미세시료채취법을 적용하여 극소량의 시료를 채취한 후 단일입자재현법으로 고고선량을 산출하였다. 모든 유물에 대하여 고고선량 값은 0.2Gy 이하로 매우 낮았으며 단일시료재현법으로 산출된 값과 비교한 결과 매우 신뢰도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유물의 고고학적 상황과 국내에서 고고선량은 평균적으로 1,000년 당 약 3.5Gy 내외의 값을 가진다는 점으로 미루어 판단하건데, 이 유물들은... -
德興里 壁畵古墳의 墨書와 圖像검토를 통해 본 鎭의 國籍
동국역사문화연구소 동국사학 2012, 제 52집 1 1-35 (35 pages)
이 글의 목적은 덕흥리 고분벽화의 묵서와 도상을 살펴 그 특징을 살펴보는 것에 있다. 특히 앞방벽화에 묘사된 鎭의 政事장면인 막부관리도와 13군태수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를 행하였다. 물론 鎭의 상세 國籍을 검토하여 얻어진 것은 선행연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기존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만큼 입증 과정에 더욱 집중하였다. 막부관리도의 막부관직이 중국 남북조대의 막부 구성과 동일하다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으며, 13郡이 상?하단 六郡과 諸郡으로 분류되어 있던 이유를 밝혀 六郡은 실상의... -
광개토왕대에 점령한 백제 지역의 소재지 를 비롯하여 가뜩이나 자료가 부족한 삼국시대사의 이해를 더욱 빈약하게 하였을 것이다. 비문의 내 용은 문헌자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으로 充滿하고 있었다. 비문에서 비중이 가장 지대한 전쟁 기사를 통하여 고구려의 임나가라 진출, 패려 정벌, 백신토곡에 서의 示威, 동부여 정벌 등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문헌자료만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내용들이었다. 더구나 고구려와 倭와의 관계를 비롯한 古代韓日關係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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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었으며, 부속구에서는 고구려의 영향으로 반구형원두정이 출현하고, 원형관고리와 받침쇠 없는 관고리의 사용이 증가하였다. Ⅰ-2단계에는 중국의 목관에서 보이는 상원하방형·제형 목관이 사용되었고, 부속구의 형식 및 사용 범위가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부속구(화형b관고리, 우산형원두정)가 출현하며 위계에 따라 조합을 다르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Ⅱ단계에는 목관과 부속구가 전반적으로 간소화되는데, 목관에서는 옻칠과 관고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부속구인 받침금구와 꽂이금구, 화형c관고리와 곡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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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산성의 석축성벽 역시 고구려 전기가 아닌 중기에 축조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쐐기꼴 성돌로쌓은 성벽이 고구려 중후기의 다른 성에 비해 정연하지 않은 점이나 서문지의 구조가 초기 옹성 구조인 것을보면 오녀산성의 성벽 축조 시기는 고구려 중기에서도 약간 이를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중기 이후에 왕궁이나 관청 등의 중요 건물에는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오녀산성에서는 기와 건물지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국내 도성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자리한 오녀산성은 국내도읍기부터는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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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곽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석축에 廟堂이건립된 형태인데, 건국계통이 말갈계 고구려인임을 암시하며 이는 『구당서』와 『신당서』에 발해건국의출자가 다르게 기록된 사실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1-M3호는 진국공, 1-M4호는 고왕 대조영의 능으로비정한다. 또한 정혜공주묘의 위치와 당 황제릉의 배장묘 배치를 참고하면 1-M1호는 무왕 대무예의 능으로 비정한다. 용두산고분군은 용해구역이 핵심능원으로써 순목황후의 묘지명을 통해 M2호분은 간왕 대명충의 능으로 잠정 비정한다. 능선 하단의 M13・14호분은 출토된 대장식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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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지역 횡구식 석곽의 축조 방법과 출현 배경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9, 제 113집 5 152-189 (38 pages)
시기에 출현하는 고구려 혹은 백제 석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최근까지 창녕지역의 고총이 다수 조사됨에도 고구려나 백제와 관련한 고고 자료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분의 축조 공정에서도 석실과의 차이가 확인되며, 무엇보다도 추가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가 거듭확인되고 있다. 이에 횡구식 석곽의 축조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횡구부가 실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며, 기능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녕지역 횡구식 석곽의 출현 배경을 추론하고자 하였다. 횡구식... -
더 타당하다고생각하였다. 계보를 파악하기 위해 고구려 이배, 백제 한성기, 영산강 유역 전달린 완의 속성과 제작기법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이배에서 사비기 전달린 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선문타날흔이 한 점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구연단의 제작방법과 전의 절단 방법이 달랐다. 이외에도 속성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전달린 완이 고구려 유이민에 의해 직접 제작되었다는 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지역성을 검토하였다. 익산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사비기 주요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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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화살통의 등장과 전개과정 - 걸이금구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8, 제 109집 7 216-255 (40 pages)
등장·쇠퇴하는 양상이 간취된다. 신라권은고구려, 백제권은 중국 삼연지역과 고구려의 영향을 함께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가야권의 화살통은 고령과 합천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성행하는데, 백제와 신라 화살통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며 III기에는 새로운 형식의 화살통(B2`식)이 만들어진다. 이 형식은 신라권에는 없지만, 공주 송산리와 나주 복암리정촌, 함평 신덕고분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동 시기 두 지역의 교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고대 한국의 화살통은 중국 삼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동북아시... -
三國時代騎兵과 騎兵戰術
류창환(Changhwan Ryu)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32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0, 제 76집 5 129-160 (32 pages)
B형은 갑기병, C형은 철기병, D형은 장식기병으로 규정하였다. 고구려는 4세기 이전부터 기병을 운용하였는데, 이때는 기사형 또는 장창무장형기병이 주력이었다. 안악 3호분이 축조되는 4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인마(人馬) 모두 갑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을 도입하고, 5세기에 들어서서 기마 충격전이 가능한 밀집중장기병대를 확립하였다. 백제와 신라, 가야도 고구려에 이어서 기병을 운용하였는데, 4~6세기에 걸쳐서 기병집단을 보유하거나 마주와 마갑, 갑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과 위세적인 성격을 지닌 장식기병을 도입하는 등... -
三國時代脫着式鐵製못신 硏究
강정무(JungMoo Kang)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32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0, 제 76집 4 97-128 (32 pages)
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스파이크슈즈의 본모습이라 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진신은 여기서 진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탈착식 철제 못신은 경산, 경주, 고령, 남원, 단양, 서울, 용인, 청원, 중국 요령성, 길림성 등지의 고분·생활·산성유적에서 현재까지 총 18점이 확인되었다. 그중 마구로 보고된 고령 지산동(高靈池山洞)과 남원 월산리(南原月山里) 출토품은 등자의 답부병(踏附) 위치와 혁공(革孔)의 크기, 출토 위치를 비교하여 마구가 아니라 탈착식 철제 못신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탈착식 철제... -
三國時代 嶺南 出土 札甲의 硏究
황수진(Sujin Hwang)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54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1, 제 78집 3 55-108 (54 pages)
성립되지만 찰갑에까지 기술교류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III기는 400년 고구려의 남정 직후의 단계로, 당시의 혼란스러운 긴장상태를 잘 나타내준다. 대성동(大成洞)세력의 멸망으로 A형 찰갑이 소멸되며, 완성형의 찰갑이 등장하기 전의 정착되지 않는 단계이다. IV기는 완성형 찰갑의 성립으로 D2형 찰갑이 부산·경산지역에서 출토한다. 이 단계에서는 완성형의 찰갑만을 부장하는 부산지역이 신라에 복속되지 않고 세력을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V기는 IV식 요찰이 등장하며 III식 요찰이 공존한다. IV식 요찰(Ω자형)은 왜계... -
5~6세기대 안동지역 세력의 구성과 그 동향
서경민(Kyungmin Seo)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32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2, 제 83집 2 48-79 (32 pages)
크게 성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구려와의 접근도 용이해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어느 정도 독립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후반이 되면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자립화를 시도하고 동시에 경북 북부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당시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의성지역과의 접근이 용이한 안동시가지 지역을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안동시가지 및 그 주변에는 신라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경주지역 적석목곽분과 유사한 안동 태화동 3호분이 축조되고... -
中國 六朝磁器의 百濟 導入背景
임영진(Youngjin Yim)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44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2, 제 83집 1 4-47 (44 pages)
37회, 고구려 20회, 신라 12회에 달하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중국 자기는 백제 193점, 고구려 10여 점, 신라 2점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중국 자기가 중국 황실에 의해 특정 견사국에 선택적으로 사여되었다기보다는 특정 견사국이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도입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백제지역에 중국 자기가 도입된 구체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백제가 중국에 견사할 때 견사에 필요한 특산물을 제공하였던 지역 세력자들이 있었고, 백제 왕실에 서는 그에 대한 보답... -
고대와 고려 목탑지의 비교 연구
류형균(Hyunggyun Ryu)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38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2, 제 85집 5 152-189 (38 pages)
고려 사원 목탑지도 산지나 구릉지보다 평지에 자리한 것이 많았다. 고구려 사원은 전부 1탑3금당식 배치를 보이는 데 비해, 백제 사원은 1탑1금당식이 주류를 이룬다. 통일신라시대 목탑지는 석탑과 마찬가지로 2탑1금당식 배치가 나타난다. 고려 목탑지 배치는 거의 1탑1금당식으로 백제의 영향을 유추할 수 있었다. 목탑지의 구성요소 중 평면은 팔각형・방형으로 분류되며, 고구려・신라・고려 목탑지 일부에서 팔각형 평면이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평면 방형이다. 목탑지 규모는 3×3칸, 5×5칸, 7×7칸 등... -
다른 곳으로 사민하였고, 이주해 온 고구려인을 가야인보다 우대한 정책을 실시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주는 소규모 집단으로 이주한 예가 많고, 이주 1세대까지는 원 거주지의 문화요소를 상당한 정도로 지니고 있었으나 2세대부터는 이주지의 문화에 동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 사회의 이주정책은 고대부터 행해져 온 이주정책의 계승과 개선의 결과로서 고대 사회의 이주정책이 어떻게 실시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 왔는지를 구명하는 작업은 현대의 이주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연구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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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垂飾附耳飾의 系統과 變遷
김우대(Woodae Kim)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46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3, 제 89집 2 48-93 (46 pages)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해석에 도달하였다. 1기에 고구려와의 관계가 심화되는 것을 계기로 시작된 신라의 이식 제작은 고구려계 기술 공인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제작 체제를 정비하고, 2기에는 신라 이식이 신라 내부 공인에 의해 안정적으로 제작되었다. 3기에는 공인집단이 분화되어, 두 공인집단에 의해 이식이 더욱 다양화된다. 한편, 이 시기부터 탈고구려 정세에 따라 이식에서 보이던 고구려적 양상은 사라지고, 대신 백제와의 관계성이 강하게 보인다. 신라 이식은 그 후 장식성이 계속 증가되어, 5기에 이르러서는 그... -
동북아시아 철기문화의 전개와 限冶供鐵정책
김도영(Doyoung Kim)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38 Pages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2015, 제 94집 2 32-69 (38 pages)
지속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철 생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의 諸 정치세력들은 서로 격심한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도 왜를 대상으로 한야공철 정책만은 일관되게 고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열도 내에서 자체 철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4~5세기대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것으로 생각되는 철정과 칠지도, 철 방패 등 수많은 한반도제 철제품의 이면에는 한반도 내 존재하고 있던 철 생산기술을 왜로 유출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철로써 왜 세력을 견제한다는 삼국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
검토의 결과, 횡혈식석실분으로 이루어진 충효동고분군은 고구려의 강한 영향을 받아 조영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증명해주는 자료로서 호우총 출토의 호우나 호태왕비의 비문, 태환이식이나 등자와 같은 유물들이 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의 묘제가 신라의 묘제 변화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점은, 당대의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와 같은 충효동고분군에 관한 연구를 통해, 공반된 토기류나 기와류, 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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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耶·新羅 初期馬具의 성격과 의미 - 騎乘用재갈을 소재로 -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2017, 제90집 1 7-23 (17 pages)
鮮卑系馬具에 기원이 있다는 견해, 三燕과 고구려 마구로부터 동시에 영향을 받았다는 시각, 가야의 초기마구는 前燕, 신라의 그것은 고구려 계보라는 의견 등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김해 대성동, 동래 복천동, 경주 황성동 출토의 초기마구들을 상세히 분석검토한 결과 선비계마구 出現前에 夫餘系馬具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 사실은 3세기말 갑자기 낙동강하류역에 대폭 반영되는 북방계문화가 부여에서 유입하였음을 증명하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부여계마구의 유입 후, 얼마 안 있어 전연과의 교류에 의해... -
보요기법과 누금세공기법으로 본 신라 금공예의 수용 과정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2015, 제86집 3 59-87 (29 pages)
고구려 금공 장인이 신라의 금공 장인에게 보요기법을 전수한 연결고리가 있다. 실크로드의 네트워크에 따른 장인들의 인적 교류가 주목되는 것이다. 신라의 금공기술에는 보요기법과 같이 초원 실크로드를 타고 동점된 기술만이 접목된 것이 아니다. 누금세공기법 중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제보석감장팔찌>에 보이는 보석감장을 결합한 누금세공기법은 보요기법의 루트를 통해 신라에 전달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금환연접구슬은 선비족 유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방지역의 해상실크로드를... -
연천 무등리 출토 찰갑의 수습 및 과학적 보존
권혁남, 이정민, 유동완, 김미현, 윤정은, 함철희, 양시은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15 Pages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2012, 제80집 4 91-105 (15 pages)
판단된다. 유적에서는 찰갑 외에도 후걸이와 사행상철기를 비롯하여 고구려 토기편과 기와편 및 곡물들이 출토되었다. 찰갑은 보루의 북서쪽 능선 돌확 옆 석축유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수백 개의 소찰이 직경 90㎝ 범위에 한정되어 분포하고 있었다. 소찰은 부식으로 인해 금속성을 띄지 못하고 산화물로 남아 있었으며, 소찰과 소찰을 연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끈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무등리 2보루 유적에서 출토된 고구려 찰갑을 대상으로 현장에서의 응급수습, 이송후의 상태조사 및 보존처리, 안전한 이송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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