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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기 외사고의 변천과 오대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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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시기 외사고의 변천과 오대산사고
  • The Mountain Repositories in the Late Joseon Period
저자명
김성희
간행물명
동국사학KCI
권/호정보
2014년|57권 (통권57호)|pp.121-146 (26 pages)
발행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한국
파일정보
정기간행물|KOR|
PDF텍스트(1.68MB)
주제분야
교육학
서지반출

국문초록

본 논문은 조선 시기 국가 주요 전적의 보존을 위해 운용되었던 外史 庫 제도의 성립 및 특징을 파악하는 데 서술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 히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적지 않은 변동이 발생하였던 외사고 입지 선정 원칙과 관련 제도의 운용 양상에 대한 면밀한 고찰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고찰의 과정을 통해 고려 시기로부터 비롯된 외사고 제도가 조 선에까지 강한 영향을 끼쳤으나, 조선의 건국을 전후하여 발생한 국내외 정세의 변화로 인해 조선 시기 외사고 제도의 운용에 있어서는 이전 시기 와 구별되는 특징적 면모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고려 시기 외사고가 주로 산간의 오지에 위치한 사찰에 설치되었던 반면, 조선 전기의 외사고 는 주로 교통이 편리한 요충지에 설치되었으며, 사고 운영과 관리의 주안 점 역시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보다는 화재 및 누수로 인한 피해의 방지 에 두어졌던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와중에 전주사고를 제외한 모든 사고가 소실되는 참화를 겪은 후 조선의 외사고 설치와 운영 방식에도 급격한 변화가 발생 하였다. 전후 외사고 복설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던 원칙은 바로 중요 국가 전적을 외적의 접근이 어려운 산간 및 도서 지방의 오지에 안치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 시기까지 교통이 편리한 도회지에 외사고를 설치하 였던 원칙을 폐기하고, ‘絶島의 산중’, ‘絶險하여 인적이 닿지 않는 곳’과 같은 오지에 외사고를 설치할 만큼 입지 선정 원칙에 있어 대대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전후 외사고 관리와 수호에 있어 불교계가 큰 역할을 담당하였 다는 점 또한 조선 후기 외사고 운용 방식의 두드러진 변화상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외사고 인근의 사찰에서 동원한 수직 승도와 승병 등이 외사고의 관리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울러 각 외사 고마다 이를 수호하는 사찰이 지정되어 사고 수호의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억불숭유의 사회 기조로 인해 실록의 보관에 승인들이 참여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이 시기에도 여전히 상존하였지만, 임진왜란 시의 활약을 통해 사회적인 위상과 역량을 증진시킨 불교계는 조선 후기 외사고 의 관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영문초록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government established four separate repositories, in Chunchugwan (春秋館), Chungju County (忠州), Jeonju County (全州), and Seongju County (星州), to store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朝鮮王朝實錄) and other important literatures of the state. The locations of those repositories were selected with a careful consideration for the easy access and efficient management. Howev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1592-98), all repositories but the one in Jeonju were destroyed and the stored documents were burned down as well. The reason of this catastrophic damage was the vulnerable locations of those repositories. They were built in important traffic centers of the country so that invaders could easily find and destroy them. After gaining this painful lesson, the Joseon government determened to establish the priority in safe custody of the Annals and other important books. When five more copies of the Annals were restored after several years of hard work, new repositories were needed. Beside the re-established repository of Chunchugwan, the other new repositories were built in the backwoods; Myohyang-san (妙香山) (later moved to Jeoksang-san (赤裳山) in 1633), Taebaeksan (太白山), Odaesan (五臺山), and Mani-san (摩尼山) (later moved to Jeongjok-san (鼎足山) in 1678). Since the mountain repositories were located in almost inaccessbile mountain ranges, it required a great deal of effort to approach them. Even though it caused inconvenience in respect of the management of the repositories, the Annals and other important literatures were kept safely, and most of them are still existing today.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 전기 외사고 제도의 연원과 성립
1. 외사고 제도의 연원
2. 조선의 건국과 외사고의 이설
3. 외사고의 증설과 제도의 확립
Ⅲ. 조선 후기 외사고 제도의 변천과 오대산사고의 설치
1. 임진왜란으로 인한 실록의 소실과 복원
2. 외사고의 復建과 오대산사고의 설치
3. 외사고의 관리와 수호사찰의 역할
Ⅳ. 맺음말

참고문헌 (16건)

  • 『史記』
  • 『高麗史』
  • 『朝鮮王朝實錄』
  • 『承政院日記』
  • 『備邊司謄錄』
  • 배현숙, 「朝鮮史庫의 藏書管理」, 『奎章閣』 2 1978.
  • 배현숙, 「五臺山史庫와 收藏書籍에 대하여」, 『書誌學硏究』 1, 1986.
  • 『朝鮮寺刹史料』下, 高麗書林, 1986.
  • 차용걸 외, 『史庫址調査報告書』, 국사편찬위원회, 1986.
  • 최일성, 「고려 외사고의 변천과 충주사고」, 『사학연구』 62, 2001.
  • 배현숙, 『朝鮮實錄硏究序說』, 태일사, 2002.
  • 신병주,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의 간행과 보관」,『역사와 현실』 61, 2006.
  • 신병주, 「조선후기 기록물 편찬과 관리」, 『기록학연구』 17, 2008.
  • 박대길, 「조선시대 사고관리의 변화」, 『국학연구』 14, 2009.
  • 박대길, 『조선시대 적상산사고 연구』, 전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0.
  • 강문식, 「조선후기 오대산사고의 운영」, 『장서각』 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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